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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man diary

대견함과 안쓰러움 그 어디쯤

만 18세 아이를 두고왔다. 어디에? 호텔(이라고 쓰지만 모텔에 가깝다)에.

 

왜냐고? 고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2학기가 되어 취업을 하게 되었고, (아이는 마이스터고등학교 재학, 2학기에 대부분 취업을 한다)

 

주기적으로 지방에 순환근무를 하는 회사의 특성상 출근하면서 사택을 받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사택신청자가 많아 출근일에 사택지정을 받게 되거나 혹은 수일 더 걸릴 수 도 있다는 안내를 받고

부랴부랴 아이가 근무하는 지역에서 근무지와 가까운곳에  하루 혹은 며칠 묵을 숙소를 구하게 된 것이다.

(물론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한다고)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우리나라 숙박업소는 부모와 함께가 아닌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 단독 숙박을 금하는 규정이 있는데,

상황상 어쩔 수 없이 아이 혼자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상황.

다행히 부모동의서가 있고, 숙박등록시 부모가 함께 등록을 하면 괜찮다고 (from 지식인)해서

몇군데 전화를 해보고, 인터넷 검색을 한 끝에 아이와 아내와 나, 세명이 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가족관계확인증명서도 혹시나 해서 가지고 갔지만 보여줄 일은 없었고, 담배냄새가 심한 첫번째 방은

부득이하게 변경하고 두번째방에 아이의 짐을 풀었다.

 

전화로 미리 확인을 한 숙소에서 무사히 등록을 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별다른 문제없이 일은 잘 풀리는 듯 했지만,

아직 만 18세 아이를 외딴곳에, 어른들이 들락거리는 숙박업소에 혼자 남겨두고 온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특히 가족중심의 펜션이나 콘도만 다녀본터에, 모텔특유의 어둡고 칙칙한 (엘레베이터도 완전 깜깜)

분위기와함께 친절한 직원분의 안내멘트중에

'다만 미성년자여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해서는 업소에서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라는 안내가

계속 귓가에 윙윙 멤돌았다.

 

물론 큰아이는 남자이기도하고, 나름 기숙사생활도 오래했고, 취업면접이다 뭐다 혼자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며

기특하고 대견하게 꽤나 어려운 미션들을 부모도움없이 (혹은 최소한으로) 잘 해온 아이다.

또 모든 경험이 가치있다 말하긴 어렵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일 혼자 첫 출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숙박업소 등록을 마치고 짐을 풀고, 아이와 저녁을 먹고, 걱정말라고 환하게 웃는 아이를 뒤로

다시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는 주적주적 내리고 있었고 일요일 저녁은 웬지 아주 늦은 밤처럼 느껴졌다.

 

아내를 스무살에 만나 서른에 결혼하고, 몇년지나 아이를 낳아 이제 그 아이가 첫출근을 앞둔 지금.

아내의 얼굴이 웬지 다르게, 그리고 그런 아내를 보는 내 모습이 어느새 다르게 변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50이 다 된 나역시 내 앞의 길들 조차 제대로 분간못하고, 넘어지고, 아파하고, 엄살을 피우곤하는데,

이제 갓 19살의 아이가 맞딱뜨리게 될 세상은 얼마나 힘겨울까?

 

'화이팅' 하고 조그맣게 속으로 외쳐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