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정리를 하면서
한편으로 직장을 알아보고, 또 한편으로는 거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처절한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워
감정이 하루에도 몇번씩 오락가락, 괴로웠다.
모아논 돈도 없고, 나이는 많았으며 고로 미래는 불투명했다.
다만 자영업을 하며 아이들과 나름 시간을 많이 보낸것. 틈틈히 여행도 다니고 즐거운 추억을 만든것.
그래서 비교적 아내와 아이들과의 유대가 좋은것.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 하나만 '잘한일' 로 파일정리가 되고
나머지는 대부분 '후회'라는 폴더에 이동되는데, 어느새 말도 안되게 많이 쌓여버린 그 폴더를 더블클릭하면
그동안 꽉차버린 자책이라는 지옥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클릭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이미 속속들이 나의 죄를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와중이었지만 하나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임대료는 나가고 기회비용은 늘어난다.
현실을 직시하자.
10년넘게 자영업을 했는데 시원치 않아 이제 문을 닫으려고하고, 모아놓은 돈도 없다.
아이들은 둘인데 한참 돈들어갈 때이고.
그렇다면 답은 뻔하지 않은가? 후회보다는 반성이고, 반성과 더불러 빨리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야했다.
다행히 재고정리를 하고 사무실 계약을 언제까지로 기간을 정확히 못박으면서 큰 줄기가 잡혔다.
마냥 일을 정리해야지... 했다면 아마 몇달이 걸렸을 지도 모른다.
시한을 정하고 순서를 세팅해놓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그 상황에서 칭찬해주고 싶은 일이다.
우선 취업이든 뭐든 새로운 수입처를 마련하기전에 물새듯 빠져나가는 고정비용을 줄여야했다.
재고를 업체에 넘기고 집기는 중고나라와 지인들을 통해 처분했다.
분신같은 캐논 카메라와 스트로보 조명과 메인 컴퓨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리에 들어갔다.
시간을 정해두고 정리하는 시간과 취업에 필요한 시간을 배분해 썼다.
시험삼아 부랴부랴 몇군데 이력서를 보낸 업체는 연락이 없었지만 낙심하기 보다는 정해진 일과에 따라 충실하려고 애썼다.
자영업을 할 때, 스스로가 스스로를 관리해야 하는 경우 아무래도 그날의 업무량에 따라
느슨해지기 쉬운데,
가능하면 시간을 정해두고 마감시간을 정하고 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중...
사무실 정리를 약 한달 앞둔 시점, 재고정리와 집기정리가 80%정도 끝나가던 시점의 어느날
인터넷 쇼핑몰 모임 카페에서 게시글을 보았다.
중국에서 배대지를 운영하는 분이 본인이 너무 바빠 스마트 스토어 쇼핑몰을 일부 운영 (상품등록, 기획전등)
할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내용을 보니 포토샵 작업이나 스마트 스토어 운영등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닌듯 보였고,
일단 이거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쪽지를 보냈고
며칠후 전화면접 요청 문자를 받았다.
거의 하루 2~3시간 정도가 필요한 알바정도의 일이었고, 일을 하게 될지 안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이 작은 일이 나에게 묘한 자신감(아니 자신감이란 느낌의 20%정도의 단어가 있으면 그 단어를 쓰고 싶지만)을 주었는데,
하나는 나름 인터넷 쇼핑몰에서 자체 쇼핑몰과 스마트 스토어, 그리고 소소한 입점 판매를 해온 경력이
아주 쓸모없지는 않겠구나 하는 마음과,
또 다른 하나는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일이 있고 찾아보면 더 많은 일이 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금의
위로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나는 그 스마트 스토어 일을 맡게 되었다.
이 별것 아닌것같아 보이는 일이 내가 가장 힘들고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져있을 때 의외의 완충작업을 해주었음을 고백한다.
비록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약간의 수입으로 여러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었고
그동안 '내일', 내가 하는 일만 하느라 좁혀져있던 시야가 약간 트이는 느낌도 있었다. 여러모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던일을 정리해나가며 취업준비 + 알바를 하던 도중
의외의 게시글 하나를 보게되었는데
다름아닌 가구 쇼핑몰 MD 구인 게시글.
내용이 짧고 명료했다.
간단한 회사소개와 함께 관심있으신분은 연락달라고 핸드폰 번호가 남겨져있는 것이었다.
아마 평소 같으면 이런 게시물을 통한 구인광고에 관심이 가지 않았겠지만,
얼마전 시작한 알바도 그렇고, 이번일도
'그냥 연락 한번 해보면 되지않을까? 혹시 면접보게 되면 경험도 되고 좋겠는걸?'
이런 묘한 긍정적인 마음이 들었다.
더 잃을게 없는 상태에서, 더 상처받을 게 없는 마음이 내린 결정.
게시물을 확인한게 오후 8시 쯤이어서,
남겨진 문자로 지원하고 싶은데 방법을 알고싶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문자를 보내고 10분쯤 지나서였을까? 바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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