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솔직히 우리나라 대표팀이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무패로 금메달을 따는 순간,
나는 미친듯 환호했었다.
야구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나라, 우리나라보다 50년은 앞서있다고 비아냥거리는 (우리와 지리적으로 굉장히 가까이 있는) 나라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고
당신들 나라에서 뛰는 선수들에 비해 연봉을 10분의 1도 못받는 선수들이 똘똘뭉쳐
'자본주의의 힘'까지 이겨낸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돌이켜보면 이런 감정의 바닥에는 단지 나라를 사랑하고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가득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한일전에는 켜켜이 쌓아온 묵은 감정들이 있을 것이다.
그 감정이 글로벌시대의 기준으로 소위 '세련된' 것은 분명 아니겠지만.
암튼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 야구는 그 옛날 김재박의 개구리번트와 역사적인 프로야구 개막전의 야구붐을 건너 또다른 차원의 '붐' 이 시작되고 있었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3년이 지났다.
분명 야구 팬도 늘어나고, 새로운 팀도 생기고, 구장도 새로 지어졌고, 그사이 둘째도 야구에 관심이 생겨 야구글러브도 사고 주말이면 야구장에도 가고, 공원에서 캐치볼도 하게 되었다.
10년이 조금 넘는 세월동안 강산은 변했고, 강호는 조금씩 추락하기 시작했다.
야구팬들의 저변은 넓어지고, 수준도 높아지고, 현장이든 온라인이든 폭발하는 응원문화를 만들어내고
어느새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남녀노소가 즐기는 전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다.
팬들이 야구를 보는 눈높이도 높아져왔고, 그 과한 열기가 온라인의 댓글로 '과하게'표현되자
댓글이 막히는 일도 생겼다.
또 KBO는 게임장면의 캡쳐나 일부 짤을 만드는 것이 저작권침해가 된다고 금지한다고 했을때도 팬들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으며
일부 야구 선수들이 최소한의 팬서비스도 외면하는 일들이 벌어져도 팬들은 참아냈으며
일부 선수가 도박을... 참았으며
도핑... 참았으며
음주운전... 도 참아...
아, 그리고 이제 자영업자들은 생업을 이어가지 못하며 눈물을 머금고 가게문을 닫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호텔에서 장기숙박중인 여성분들과 술을...
도 참았...
아... 이렇게 다 참고 이해하니까 한국 야구 팬들은 뭐다?
야구가 아니라 호구가 되었다. 여기서 호구는 물론
好球人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 에서 사람人을 생략한 그 '好球' 이니 오해가 없기를.
이래도 용서해줘, 저래도 좋아해주고 KBO적자 날까 선수들 어디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해주는 우리 야구팬들은 이렇게
호구가 되었다.
정치도 그렇지만,
이렇게 무작정 좋아만 해주는 팬들을 누가 신경이나 쓸까?
그저 야구 경기 늘리고 수준낮은 경기라도 꾸역꾸역 많이 하고 문제생기면 얼렁뚱땅 넘어가고,
'모든건 성적으로 보답'이라고 외치며 허슬플레이 좀 해주면... 뭐, 그렇게 넘어가는
호구들중의 한명이다.
그럼, 이런 호구인의 입장에서 작은 바람을 적어보려한다.
1. 야구발전기금을 만들자. (야구 티켓값의 일부금액을 할당해서)
야구가 인기스포츠라면, 이제 진정으로 많은 사람이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토양을 만들자.
아이들과 야구하러 갈만한 곳이 없는데,
한집건너 한집 아이들의 소망중 하나가
'야구장에서 야구한번 해보는 것' 이다.
정식 야구장을 원하는건 아니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시에 한곳쯤은
유소년 야구장보다 좀더 덜 엄격하게 관리되는, 즉 대관신청없이 누구나 아이들과 야구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음 좋겠다.
야구시설이 비교적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은 아니어서 많은 제약이 있다는건 알고있다.
일반적인 유소년 야구장 시설보다 부족해도 좋다.
그저 아이들이 마음껏 공치고 뻥뻥 치고 달릴 수 있는 공간이 있음 좋겠다.
늘 공터와 공원 일부에서 눈치보며 하던 '동네야구'에서 정말 야구 좋아하는 아이들이 맘껏 놀만한 공간이 있었으면.
1. 올림픽 야구에는 앞으로 프로팀을 보내지말자.
몇 개 되지도 않는 팀이 억지로 경기수 맞춰 고도의 수학문제를 푸는 느낌의 방정식 게임에
프로선수들이 나가 아웅다웅 하는 경기.
나는 도무지 재미를 모르겠다.
차라리 프로입단전의 어린 선수들. 아직 돈을 받고 게임을 뛰지 않는 고교, 대학선수들로 선발해서
다른 나라의 선수들과 교류하고 올림픽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게 우리나라만 그렇게 한다고 될까? 하겠지만, 우리라도 한다고 하면 좋겠다.
다른나라들도 아마... 음...내가 너무 순진한 걸까.
일단 이런 여론이라도 좀 들어주길. (오죽하면... 이라는 마음으로)
2. 고교야구를 중계해주자.
고교야구가 한때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많다. 다만 사람들이 잘 모를 뿐.
일단 중계해주자. 선수들 인터뷰도 하고. (가끔 대회 결승전 중계하는거 말고)
그런데 비용이 문제? 야구티켓수입의 일부를 활용하자.
고교야구가 활성화되면 전체적인 야구리그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3. 여자야구, 사회인야구, 유소년야구를 지원하자.
지금 야구장 다니는 사람들 중 100사람 잡고 물어보자.
티켓가격의 일부가 프로야구가 아닌 일반인 야구관련 저변 확대에 사용된다고하면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골때리는 그녀들이 왜 재미있는가? 그녀들이 축구를 기가막히게 해서 재미있는가?
그녀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축구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재미있는 것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프로야구 이외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자본'에 움직이는 프로야구가 보여주지 못하는 '야구'라는 스포츠의 새로운 재미를 알게해줄 것이다.
언제까지 '보는'스포츠로 만족할 것인가?
이제 야구는 '보는'스포츠에서 '직접해보는'스포츠로 전환되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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