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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man diary

가장 서운했던말, 아니 상처가 됐던 말

살면서 생각나는 서운한 말이 있다.

나는 내가 굉장히 쿨한 성격이라 웬만해서 말로 받은 상처는 다 잊어버리고 산다고 생각했고,

사실 어느정도는 그래온것 같기도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쿨한 성격이라는 것이 아니고,

(나는 내가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털털하다고 한다)

그런 상처를 다 가지고 있으면 내 자신이 너무 힘드니까,

어쩌면 용불용설처럼 나는 그런 방어기제를 잘 발달시켜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암튼 그런 나에게도

최근 가장 잊혀지지 않는 농담을 들었는데...

사실 최근 몇년, 아니 몇십년을 들었던 이야기중 가장 서운하고, 화나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말을 듣고나서 '정말 이 친구와는 굳이 억지로 관계 유지를 할 필요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는데,

아마도 그 농담이 아이와 관계되서 더 그랬던게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친구와의 관계가 불편한 지점이 있었는데, 아마 그날 이 대화에서 확실한 결정이...)

 

나에겐 아이가 둘이있다. 둘다 사내아이고 다섯살차이다.

큰아이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했다. (둘째는 이제 중학교 2년이 된다)

큰아이가 중학교 3학년때 갑자기 공업계열 고등학교를 가겠다고 했고, (마이스터고)

난데없이 수원하이텍고등학교 면접을 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중학교 1~2학년때까지 특별히 진로에 대해 함께 깊게 얘기해본적은 없었지만,

별다른 사교육 없이도 (태권도만 보냈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고,

둘째와는 달리 스스로 할일을 하는 아이였기에

다른 아이들처럼 (사실 이말처럼 편견이 또 없지만, 나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후 대학에 가는걸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급작스럽게 마이스터고를 간다는 것에 조금 당황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은 아이었고, 아내와 나 역시 변화하는 사회 시스템과

대학교육에 대한 회의도 있었기에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었다. (물론 수원하이텍고등학교가 만만한 학교도 아니어서

서류심사 - 면접을 통과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떨어져도 나름 좋은 경험이 될꺼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덜컥(?) 합격을했고,

3년간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고(코로나 시작때라 어려움도 많았지만)

방학때는 학원도 다니며 (용접도 배움) 나름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고,

졸업을 앞둔 3학년 2학기에 대전에가서 필기도보고, 면접도 보고

(정장과 구두도 사고 혼자서 KTX도 예매해서 다니는걸보며 내가 모르는 새 많이 컸구나 했음)

내가 그 나이때 하지 못했던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결국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나중에 다시한번 이때의 기억과 감정을 다시 정리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 같아 자세히 적지는 않겠지만,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의 아이가 대학이 아닌 취업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정말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게 되는데,

혹시나 이런 과정까지 오게 되는 아이의 결정 과정에서 특별히 넉넉해보이지 않는 부모의 재력도 고려대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

일찍 사회생활을 고졸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하며 겪게될 여러가지 어려움.

혹시라도 만나게될 (아니 거의 확실한) 사회적인 편견이나 차별같은 것들을 잘 이겨내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잘 버텨(?)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로 

한편의 대견함과 다른한편의 오만가지 걱정과 기대들이 교차하던 순간들이었다.

그래도 이 모든 복잡한 감정을 한가지로 요약하자면, 

자랑스러웠다. 아이가.

 

암튼 아이는 정식으로 입사를 하고, 회사근처에 사택을 받아 근무를 하게 되었고

그날은 아이의 짐이 많아 일요일 밤 아이와 함께 사택으로 함께가서 짐을 내려 주고 혼자 운전해

돌아오던 길에 (늦은 밤이었다) 그 친구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늘 그렇듯 '뭐하냐?' 로 시작하는 대화.

아이가 취업을했고, 내가 지금 이러이러해서 혼자 운전해 오고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대뜸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리가

'야 부모가 얼마나 변변치 않으면 애가 벌써 사회에 나가 취업을하냐' 였다.

 

물론 농담이었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봐온 친구다.

내가 모를리가 없다.

하지만 이때 내가 든 생각은

'할 농담이 있고 안할 농담이 있는데 이 친구는 그걸 구분을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아이의 진학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한번 통화로 안부를 묻다가 이야기한적도 있는데

전혀 기억못하고 있었고.

 

그래. 아마 이런 농담에 예전의 나였다면 재치있게 받아쳤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통화때는 그냥 웃고 넘겼다. (아니 웃고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농담이 내게 '유머'로 오지 않고 '상처'로 온 이유는

아마 내 자격지심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역시 마음 한구석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이가 마이스터고에 진학하고, 대학보다는 취업을 선택한 배경에는 나또한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짐짓 고민을 했었으니까. 

그래서 이 아이가 더 여유롭고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였을까.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서로 무언가 찜찜하게 마무리되었다.

늘 불문율처럼 유쾌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유쾌하게 마무리되었어야 했는데,

내가 그 룰을 깨뜨리고 어색함으로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물론 분위기를 어색하게 이끈건 평소답지않은 나의 반응탓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어색함'속에 그동안 내가 느껴왔던 관계의 불편함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집에와서 곰곰히 생각했다.

어쩌면 그 친구의 유쾌함에 내가 너무 늦게 불쾌함을 표현했던게 아닐까?

내가 좀 더 일찍 내 솔직한 감정을 털어놔야 했던 건 아닐까?

 

...

 

아니,

나는 '그래 내가 잘못이야' 라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그 친구를 비난하거나 욕하고 싶지도 않고, 나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습관도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은 한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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