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밤늦게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큰아이를 숙소에 데려다주며 오는 밤길이었고 몇개월만의 통화였던 것 같다.
평소처럼 요즘 잘 지내냐 부터 시작해, 언제한번 모여야지로 발전하는 이야기.
그런데 전화통화 하는 내내 무언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고,
그동안 내가 왜 이 친구와의 대화가 불편했을까 하다 내 솔직한 마음을 꺼내
보여줬다.
오랫동안, 어린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다가
서로 다른 길, 지역을 살면서도 학창시절의 우정으로 모임이나 경조사를 챙기고
가끔 술한잔을 나누고
친구가 하는 전시 (친구가 도자기 관련 일을 한다)에도 틈나는 대로 가서 만났던 친구인데.
언젠가 부터 이 친구가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느 지점부터였을까?
곰곰히 그 지점을 따라가다보니 정확히 '이지점' 이라고 할만한 큰 포인트에서 멈추지는 못했지만,
이런 생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들, 대화들, 상황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된 이후의 나는, 정확히는 서른 후반 무렵부터 였을까, 내 감정에 비교적 솔직하게 말하는 편으로 바뀌어서,
억지로 좋은척하기보다는 좋은점과 불편한점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물론 기계처럼 항상 그렇게 솔직한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불편하면서도 참고 만나는 관계나 상황은 멀리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억지춘향격으로 정기적으로 의미없는 만남은 모두 빠지고,
실제로 내 감정에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이 남은 것 같다.
물론 그 '솔직함' 이 사람에 따라 어느정도 인지는 다르겠지만...
그런데 이 친구와는 나의 그런 '변함'을 말하기가 어려웠다.
늘 어릴적 추억, 오랜 시절에 얽혀있고 항상 현재보다는 과거부터 퇴적된 관계에 따라 늘 이전 버릇처럼 오가는 대화였고
그 틀을 깨는 것이 이 친구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내잘못'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이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친구 이야기에 악의는 조금도 없고 단지 이 친구의 스타일일 뿐이고
이 친구는 내가 아닌 누구에게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고
또 정도 많고, 술도 좋아하고, 의리도 넘쳐 주변에서 늘 사람이 많은 친구인데
내가 굳이 내가 느끼는 개인적인 불편함을 이야기해서 그 친구가 오랫동안 유지했던 그 '스타일'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또 내가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순간 이제까지 내가 해온 말들이나 관계가 모두 위선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함'을 가장해 불편했던 친구와 관계를 끊고싶었던건 아닌지.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던건 아닌지.
혹시라도 내게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 불안했던 것 같기도 하고. (왜 굳이 그런 일에 불안함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라고 하면 그건 아마 함께 해온 추억이 너무 커서인것 같다)
암튼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했다.
무조건 모임에 나오라는, 출석하라는 친구의 얘기에
내가 왜 그 모임을 나가고 싶지 않은지, 내가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내가 너에게 바라는점과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서운했던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했다.
물론 전화로 얼마나 내가 내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할 수 있었을까.
는 모르겠지만.
통화후 친구는 내 달라진 태도에 조금 당황하면서,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또 그 적당히 마무리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문자한통을 받으며 얘기는 정리되었다.
아마 그 친구는 가벼운 헤프닝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이야기해도 그 친구는 자기방식대로 이해하기 쉽고, 더 큰 오해만 쌓일 수 있어서 내가 망설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내가 별것 아닌걸로 스스로를 다독여왔던 '불편함' 에 대해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아 사실 좀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후 나에게 밀려올 건너건너 친구들에게 전해질 불편한 이야기와 오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마음.
어제는 그런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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